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누가복음은 유월절을 앞두고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일 방도를 찾으며 백성을 두려워하던 때에, 가룟 유다가 성전 경비대장들과 예수를 넘길 기회를 의논했다고 전한다. ‘사탄이 들어갔다’는 말은 배신을 고립된 실수로 축소하지 않고 예수를 향한 어둠의 대적을 드러낸다.
누가는 유다의 배신에 사탄의 활동을 말하지만, 곧바로 유다가 찾아가고 의논하고 허락하며 기회를 찾는 행동도 전한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유다의 책임을 지우거나 모든 실패를 악한 영에게 돌리는 설명이 아니다. 예수의 수난에는 실제 인간의 탐욕·두려움·권력 남용과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맞서는 악의 세력이 함께 드러난다.
유다의 비극은 다른 사람을 ‘돌이킬 수 없는 배신자’로 낙인찍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 하시고, 베드로의 실패 뒤에는 돌이켜 형제를 굳게 하라는 길을 말씀하신다. 본문은 악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공동체가 자신의 유혹과 책임을 정직하게 살피게 한다.
흔히 이렇게 읽는다 — 사탄이 들어갔다는 말은 유다가 자기 선택에 책임이 없었음을 뜻하거나, 실수한 사람을 곧바로 악마화해도 된다는 뜻이다.
본문이 말하는 것 — 누가는 사탄의 활동과 함께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의논하고 예수를 넘길 기회를 찾는 행동을 함께 기록한다. 악을 실제로 보되 인간의 책임과 회개 가능성을 지우지 않는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사탄의 활동과 인간 책임의 관계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설명할지는 전통마다 다르다. 누가의 좁은 문맥은 유다의 구체적 선택을 지우지 않으면서 예수의 수난이 영적 대적의 어두운 시간 안에서 일어남을 말한다.

유다의 비극은 다른 사람을 ‘돌이킬 수 없는 배신자’로 낙인찍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 하시고, 베드로의 실패 뒤에는 돌이켜 형제를 굳게 하라는 길을 말씀하신다. 본문은 악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공동체가 자신의 유혹과 책임을 정직하게 살피게 한다.
이 시대의 힘 앞에서
하나님은 어디 계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