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이월 십오일이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성경신학 주제근거 확인됨신 광야에서 문제는 배고픔입니다. 백성의 기억은 곧장 애굽의 고기 가마와 배부른 떡으로 돌아갑니다. 자유를 얻은 백성이, 굶주림 앞에서는 종살이의 식탁을 그리워합니다.
여호와의 응답은 단순한 식량 투하가 아닙니다.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시되, 날마다 일용할 것을 거두게 하십니다. 많이 쌓아 두는 방식이 아니라, 오늘 받을 것을 오늘 받는 방식입니다. 여섯째 날에는 갑절이 되고, 일곱째 날에는 거두지 않습니다. 만나의 리듬은 먹는 문제를 순종의 훈련으로 바꿉니다.
저녁에는 고기, 아침에는 떡. 이 공급을 통해 백성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여호와가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동시에 원망의 방향도 드러납니다. 모세와 아론을 향한 것처럼 보인 불평은 실제로 여호와를 향한 불평입니다.
장면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메추라기가 진을 덮고, 이슬 뒤에는 작고 서리 같은 양식이 남습니다. 백성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묻고, 그 이름을 만나라 합니다.
한 사람 한 오멜, 곧 에바의 십분의 일로 약 2.0~2.2L 정도 되는 분량을 거둡니다. 남음도 부족함도 없는 분량, 아침까지 남기지 말라는 금지, 안식일 전날만 보존되는 예외. 만나 이야기는 기적이면서 동시에 시간표입니다.
마지막에는 한 오멜을 항아리에 담아 대대로 간수하라는 명령이 붙습니다. 후손이 보아야 할 것은 신기한 물질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광야에서 먹이신 양식입니다. 신명기는 훗날 이 사건을 낮춤과 시험, 그리고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여호와의 말씀으로 산다는 훈련으로 해석합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이 기억을 다시 열어, 참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떡이며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에는 한 오멜을 항아리에 담아 대대로 간수하라는 명령이 붙습니다. 후손이 보아야 할 것은 신기한 물질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광야에서 먹이신 양식입니다. 신명기는 훗날 이 사건을 낮춤과 시험, 그리고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여호와의 말씀으로 산다는 훈련으로 해석합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이 기억을 다시 열어, 참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떡이며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약속은 지금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