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예수는 고라신과 벳새다에서 행한 권능이 두로와 시돈에서 행해졌다면 그들이 회개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가버나움에도 높아짐과 낮아짐의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이 경고는 민족이나 지역의 본질을 낙인찍는 말이 아니라, 예수의 사역을 가까이서 보고도 응답하지 않은 이들에게 주어진 회개와 책임의 말씀입니다.
Luke 10:13-15에서 예수의 ‘화 있을진저’는 고라신·벳새다·가버나움을 향합니다. 말씀의 근거는 그곳에서 이미 행해진 권능입니다. 두로와 시돈이 더 낫다는 비교는 다른 도시의 도덕적 본질을 판정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더 큰 빛과 권능을 접한 이들에게 더 무거운 응답 책임이 있음을 드러내는 수사입니다.
베옷과 재에 앉아 회개한다는 표현은 회개의 가시적 몸짓을 가리킵니다. 예수의 경고는 단지 재난을 예고하는 데 멈추지 않고, 권능을 보았다는 사실이 회개와 믿음의 응답을 요청한다는 점을 밝힙니다. 가버나움의 하늘과 음부의 대비도 자족적 높아짐과 심판의 낮아짐을 강하게 대조합니다.
곧이어 예수는 제자들의 말을 듣는 자가 자기 말을 듣고, 제자들을 저버리는 자가 자기를 저버리며, 자신을 저버리는 자가 자신을 보내신 이를 저버린다고 하십니다. 경고의 중심에는 파송된 증언과 예수 자신에 대한 응답이 있다. 이 말씀을 유대인·갈릴리 사람·특정 도시 전체를 정죄하는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예수와 제자들 역시 유대인으로서 이 땅의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신다.
흔히 이렇게 읽는다 — 고라신과 벳새다의 경고를 어느 민족이나 도시가 본질적으로 저주받았다는 판결로 읽는 것.
본문이 말하는 것 — Luke 10:13-16은 그곳에서 행한 권능과 회개하지 않은 응답을 근거로 경고하며, 제자들의 증언을 듣고 저버리는 일이 예수와 보내신 이에 대한 응답과 연결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예수가 거론한 각 도시에서 행한 권능의 전체 목록과 정확한 위치는 Luke 10에서 열거되지 않는다. 본문은 지리 안내나 집단의 고정된 성격보다, 예수가 행한 일과 그것에 대한 회개의 응답을 강조한다.

곧이어 예수는 제자들의 말을 듣는 자가 자기 말을 듣고, 제자들을 저버리는 자가 자기를 저버리며, 자신을 저버리는 자가 자신을 보내신 이를 저버린다고 하십니다. 경고의 중심에는 파송된 증언과 예수 자신에 대한 응답이 있다. 이 말씀을 유대인·갈릴리 사람·특정 도시 전체를 정죄하는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예수와 제자들 역시 유대인으로서 이 땅의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신다.
이 시대의 힘 앞에서
하나님은 어디 계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