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
열두 살 예수의 말은 가족을 거부하는 선언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요셉을 ‘네 아버지’라고 부르며 근심을 말하고, 예수는 성전 안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우선적 관계를 말한 뒤 부모와 함께 나사렛으로 내려가 순종합니다. Luke는 두 관계를 충돌시키지 않고 구별해 놓습니다.
Luke 2:41-48에서 예수의 부모는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열두 살 예수는 절기가 끝난 뒤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렀고, 부모는 사흘 뒤 선생들 가운데서 듣고 묻는 그를 찾습니다. 마리아는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고 말합니다.
예수의 대답은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입니다. NKRV가 ‘아버지 집’으로 번역한 말은 성전 장면에서 하나님의 일을 향한 예수의 필연성을 드러냅니다. 이는 요셉의 양육 역할을 부정하는 문장이 아니라, 예수가 하나님을 독특하게 ‘내 아버지’로 부르며 성전에서 그 아버지께 속한 일에 있어야 한다고 밝히는 말입니다.
부모는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지만, Luke 2:51은 예수가 그들과 함께 나사렛으로 내려가 순종했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이 표제어의 교리적 초점은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 정체성과 아버지의 일에 대한 필연성에 있으며, 그것을 가족에 대한 불순종이나 성전에서의 우월 과시로 바꾸지 않습니다.
흔히 이렇게 읽는다 — 예수의 ‘내 아버지’라는 말을 요셉을 모욕하거나 가족 책임을 거부한 선언으로 읽는 것.
본문이 말하는 것 — Luke 2:48은 마리아가 요셉을 ‘네 아버지’라고 부른 사실을, 2:49는 예수가 ‘내 아버지’께 속한 필연을 말한 사실을, 2:51은 예수가 부모에게 순종한 사실을 한 장면 안에 둔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2:49의 ‘내 아버지 집’은 헬라어의 생략된 표현 때문에 ‘아버지의 집’ 또는 ‘아버지께 속한 일’로 번역될 수 있다. 어느 번역을 택하든 Luke의 바로 앞뒤 문맥은 성전,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부른 예수, 그리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귀환을 함께 둔다.

부모는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지만, Luke 2:51은 예수가 그들과 함께 나사렛으로 내려가 순종했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이 표제어의 교리적 초점은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 정체성과 아버지의 일에 대한 필연성에 있으며, 그것을 가족에 대한 불순종이나 성전에서의 우월 과시로 바꾸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