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Matthew 18의 어린아이는 현대적 순수함·귀여움의 상징으로만 읽으면 안 됩니다. 고대 사회에서 어린아이는 권리와 지위가 낮은 존재였고, 예수는 천국의 큼을 지위 상승이 아니라 돌이킴, 낮아짐, 낮은 자의 영접으로 뒤집어 설명하십니다.
Matthew 18:1-5는 제자들이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고 묻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는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핵심은 어린아이의 낭만적 순수함이 아니라 낮아짐입니다. 예수는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묻는 ‘큼’은 서열과 명예를 향하지만, 예수의 답은 의존적이고 낮은 위치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틀어집니다.
Mark 9는 같은 흐름을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라는 말로 풀고, 어린아이 하나를 안으시는 행동을 보존합니다. Luke 9는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라고 요약합니다. 세 병행본문은 모두 지위 경쟁을 낮은 자 영접과 섬김으로 전복합니다.
따라서 어린아이처럼 된다는 것은 미성숙해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천국의 길은 자기 중요성을 증명하는 길이 아니라, 낮은 자로 돌이키고 낮은 자를 예수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길입니다.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은 예수를 영접하는 일이 됩니다.
흔히 이렇게 읽는다 — 어린아이처럼 되라는 말은 순수하고 귀여운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다.
본문이 말하는 것 — 예수는 ‘자기를 낮추는 사람’을 천국에서 큰 자라고 설명하신다. 병행본문도 첫째가 되려면 끝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며, 가장 작은 자가 큰 자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어린아이의 어떤 심리 특질을 세부적으로 알레고리화하기보다, 마태가 직접 설명한 ‘자기를 낮추는 사람’과 병행본문의 ‘끝·섬김·가장 작은 자’ 구조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어린아이처럼 된다는 것은 미성숙해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천국의 길은 자기 중요성을 증명하는 길이 아니라, 낮은 자로 돌이키고 낮은 자를 예수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길입니다.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은 예수를 영접하는 일이 됩니다.
이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긴 것 중
내가 다시 볼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