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장면은 키 작은 사람의 귀여운 일화가 아니라, 여리고의 부유한 세리장이 군중 때문에 예수를 볼 수 없어 공개적으로 체면을 낮추며 앞질러 올라가는 장면입니다. 예수는 그를 군중 속에서 불러내어 그의 집에 머무르겠다고 하십니다.
Luke 19:1-6에서 예수는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십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며 부자입니다. 그는 예수가 어떤 분인지 보고자 하지만,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달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갑니다. 예수가 그 길로 지나가시기 때문입니다.
세리장은 단순한 회계 담당자가 아닙니다. 복음서의 세리는 로마 지배 아래 세금과 통행료 체계와 연결되어 사회적 낙인을 받는 집단으로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Bible Gateway의 Encyclopedia of The Bible도 복음서의 tax collector/toll collector를 로마 시대 세금·통행료 체계 안에서 일하며 죄인들과 함께 묶이던 집단으로 설명합니다.
Luke도 레위의 집 식탁,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삭개오 이야기에서 세리의 사회적 긴장을 반복해서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삭개오의 나무 오르기는 단순한 시야 확보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부자인 세리장이 군중 앞에서 달리고 나무에 오르는 모습은, 예수를 보고자 하는 열망이 사회적 체면보다 앞서는 장면입니다. 예수는 그곳에 이르러 삭개오를 이름으로 부르시고,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합니다. 그러나 무리는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라고 수군거립니다. 이 수군거림은 Luke 15에서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께 가까이 나아올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불평한 장면과 같은 방향입니다.
따라서 돌무화과나무는 삭개오의 작은 키를 설명하는 소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멀리 밀려난 세리장이 예수를 보고자 공개적으로 움직이고, 예수가 그를 찾아 집으로 들어가심으로 죄인 영접과 구원의 논쟁을 여는 자리입니다.
흔히 이렇게 읽는다 — 삭개오 이야기는 키 작은 사람이 나무에 올라 예수를 본 귀여운 어린이식 장면이다.
본문이 말하는 것 — Luke는 삭개오를 세리장이며 부자라고 소개하고, 무리가 예수가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고 수군거리는 장면을 붙인다. 나무 오르기는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부유한 세리장이 예수를 보기 위해 체면을 내려놓는 공개 행동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돌무화과나무의 식물학적 세부보다 Luke가 직접 말하는 기능이 중요하다. 군중과 키 때문에 볼 수 없던 삭개오가 앞질러 올라가고, 예수가 그를 내려오게 하여 집에 머무르겠다고 하시는 흐름이 장면을 이끈다.

따라서 돌무화과나무는 삭개오의 작은 키를 설명하는 소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멀리 밀려난 세리장이 예수를 보고자 공개적으로 움직이고, 예수가 그를 찾아 집으로 들어가심으로 죄인 영접과 구원의 논쟁을 여는 자리입니다.
이 몸짓이 말하려던 마음을
나는 어떤 몸짓으로 하나요?